아내가 결혼했다 2012/06/19 11:35 by The Mandy

대부분의 로맨스 드라마에서의 젊은 성인 남녀는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운명같은 아름다운 사랑에 빠지고 '결혼'이란 법적인 결합제도를 통해 이 사랑을 결실이 아름답게 맺어진다는 엔딩을 기본골자로 한다. 백설공주, 신데렐라의 서양 고전뿐 아니라 우리네 콩쥐와 팥쥐등의 고전부터 최근 개봉된 로맨스 영화까지 대부분의 러브스토리가 그러하다. 또한, 우리네는 태어나자마자 부모라는 무한한 사랑을 주는 존재의 보살핌을 받으며 성장하게 되는데 이 때부터 바로 결혼(엄밀히 말하자면, 일부일처제)을 '법적인 제도를 통해 결합한 성인 남녀가 가족을 이루며 감정적인 안정과 재산을 보호할 수 있는 필수가결한 요소'로 자연스럽게 학습하며 당연시하게 된다.

사실 결혼을 자손번식이라는 기능적인 면에서 보자면 대부분의 현대문명국가에서('문명화된'-이라는 기준이 모호하지만 여기서는 명문화된 헌법을 준수하는 민주주의국가로 제한한다.) 법제화된 제도로 채택하고 있는 일부일처제는 많은 자식을 짧은 기간내에 효과적으로 가질 수 있는 여러 형태의 복혼(일처다부제, 일부다처제, 집단혼등)과 비교해 볼때 그다지 큰 효용성을 기대할 수 없는 제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개인의 자유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이에 따른 여러 기본권을 헌법에서 보장하는 반면 자유로이 로맨스를 즐길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지 않고 결혼이라는 제도로 제한한 것일까?

이 질문에 대한 근본적인 답을 구하려면 먼저 결혼제도가 어떻게 해서 생겨나게 되었는지부터 추론해 보아야한다.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책이라는 성서에서는 하나님이 아담을 창조하였고 홀로 외로워하는 아담을 위해 그의 갈비뼈로 이브를 창조하여 그에게 짝을 주었다라고 기술되어있으며 이는 우리가 알 수 있는 인류 최초의 명문화된 결혼사례다. 이와 같이 우리는 인류 역사가 시작된 이후부터 결혼제도를 만들고 지켜왔다고 믿어왔으나 사실 오늘날의 인류와 같이 고도의 사고를 하기 시작했다고 인식되는 호모사피엔스사피엔스로 진화한 10만년전부터 우리 조상들에게 여러 가지의 결혼제도가 존재하여왔음은 여러 사료와 유적을 통해 입증된 바이며 현재에도 폴리네시아등의 지구상 수많은 원시사회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일부 외부로 부터 고립된 사회에서는 일부일처제가 오히려 그들의 상식에 어긋나며 비효율적인 제도라고 인식한다. 15만년의 인류역사중 기록이 없어 확실하게 알수 없는 선사시대를 제외한 6,000년정도 남짓을 살펴보자. 서양세계(동양권은 20세기 이후부터 서양법제를 받아들였으므로 여기서는 논외로 한다.)는 고대 그리스-로마시절부터(물론, 남성중심사회에서 여성에 대한 보이지 않는 혹은 명백한 법적, 사회적 차별은 있었지만) 일부일처제를 원칙으로 한 결혼제도를 사회의 근간으로 이어왔다. 특히, 10세기 이후 거의 모든 유럽 국가들이 기독교국가로 재탄생함에 따라 이 '성인 남녀 일대일 평생계약제도'는 신의 메세지라는 종교적인 신성한 의미까지 더해졌으며 계몽기(16~17세기)를 거쳐 근대국가들이 탄생함에 따라 일부일처제는 당연하고도 마땅하여 이를 어겼을 시에는 세간의 도덕적 비난을 감수해야할 뿐 아니라 법적인 처벌의 책임까지 져야하는 제도로 거듭났다. 시간이 지나 현대에 이르러 개인의 자유 존중을 최고의 가치로 인식하는 네덜란드와 같은 진보주의적 국가에서는 성적 소수자들간의 합법적 결혼의 자유까지 인정하고 있으나 정작 이같은 진보적 결혼제도'남녀 구분없는 성인 일대일의 결합'이지 '일대 다수' 혹은 '다수 대 다수'의 결합을 인정하고 있지는 않다. 분명, 결혼 후 삶이 다할 때까지 상대 배우자만 사랑하는 소위 '고결한'사랑이야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라고 쳐도 하루가 다르게 치솟고 있는 이혼율, 신문에서 흔히 보는 수많은 치정,간통등의 사건이 주위에서 흔히 볼수 있는 것임을 고려해 볼 때 이는 아주 이상향적인 것이지 실제 현실에서는 이 남녀간의 서로에게 콩깍지가 쌓여 모든것이 아름다워보이는 이 아름다운 기간은 몇 년안가 쉽게 사그라지고 마는 일시적인 현상임을 알 수 있다. '이같이 상대방의 모든것이 사랑스럽게만 보이는 핑크빛 로맨스의 기간이 3년도 채 안가 사라질 것을 알면서도 왜 대부분의 사람들은 결혼제도에 목숨을 매는 것일까?'라는 질문에 대한 극단적으로 다른 해석과 가치관이 이 영화 '아내가 결혼했다'의 남녀주인공 '주인아'와 '노덕후'의 이야기다.

여자주인공 주인아는 굉장히 아름다운 외모의 소유자(손예진역)로 사근사근한 성격까지 더해져 모든 남자들에게 '주인아씨'라는 소리를 들으며 누구라도 그녀를 보면 사랑에 빠지고 만다. 능력있는 프리랜서 프로그래머로 지극히 평범남인 노덕후(김주혁역)의 회사에 입사한 그녀는 회사동료들의 관심을 흠껏 받고 있으며 이를 그녀또한 아주 잘알고 있다. 좋아하는 여자에게 말 한번 제대로 붙일 용기도 없는 이 노총각 덕후는 그녀의 이름을 부르면 부를 수록 그녀가 자신의 '주인아씨'가 되고 있음을 생각하지만 매력적인 그녀에 비해 자신이 얼마나 '덕후'같은 존재임을 생각하면 할 수록 자신이 너무도 보잘 것 없는 것같아 감히 그녀에게 실없는 농담조차 붙일 수 없고 그녀를 업무상으로 '주인아씨'라고 부르는 것이 전부다. 그녀가 회사를 그만 둔 후 다시 만날 기회가 없을 줄 알았는데 하늘이 도왔는지 우연한 기회에 재회하여 운좋게 술한잔을 같이 기울일 수 있게 된다. 축구광인 자신에게 바르샤 (FC바르셀로나)가 어제 레알에게 져서 하루종일 울적해요"며 뾰루퉁 입술을 내미는 순간 '이 여자만을 자신의 주인아씨로 평생 사랑하는 것이 더이상 거역할 수 없는 운명이라는 직감을 가진다. 그런데 이토록 미치도록 사랑스럽고 매력넘치는 여자가 자신에게 관심이 있단다. 당연히 인아의 집에서 커피 한 잔만 했을리 없는 그날 밤 이후 둘은 서로를 사랑하고 아껴주는 연인이 되었고 시간이 흘러 서로를 더 잘 알아가고 관계가 깊어감에 따라 덕후는 인아를 "내꺼"라고 말하며 힘껏 껴안는다. 이때 인아는 멈칫하며 "난 덕후씨를 정말 정말 사랑하지만 난 내꺼야"라고 선을 긋자 덕후는 순간 패닉상태에 빠진다. 내가 사랑하고 상대방도 자신을 사랑하면 당연히 상대방도 자신의 것이 되는 것고 다른 사람과의 연애조차 금지 된것이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는데 사랑하지만 네 것은 아니라니?

여기서 이 영화는 '사랑이 곧 소유를 동반하는 것일까?'라는 질문을 던진다. 물론 덕후를 사랑하지만 덕후외에도 사랑하는 남자가 생기면 언제든지 다른 사랑을 시작할 수 있다는 인아와 인아외에는 다른 여자는 생각해 볼수도 없는 덕후. 더 사랑하는 쪽이 약자가 된다는 일설처럼 덕후는 점점 인아의 모든 것이 궁금해 미칠것 같다. 조금만 연락이 없고 전화를 받지 않아도 그녀의 집에 찾아가
하루종일 뭐했는데 연락을 안받냐며 소리치며 집착하기 시작한다. (결혼 전인 이때부터 인아는 한재경-주상욱역을 만나기 한 것 같다.) 하지만 사랑을 한 쪽의 감정이 식으면 다른 한 쪽이 포기하면 종료되는 관계로 인식하고 있는 인아에게 덕후의 아픔따위는 당연히 이해되지 않는다. 그런 뻔뻔한 그녀가 밉지만 더 좋아하는 약자는 자신이라 아무리 노력해도 포기가 되지 않자 다른 방식으로 그녀를 완전히 소유하고 싶어진다. 인아가 자신과 결혼을 해서 자신의 아이를 낳으면 뭐 별도리 있냐는 생각에 끊임없이 결혼을 해달라고 그녀에게 떼를 쓰기 시작한다. 간신히 그녀와의 결혼에 성공한 그는 달콤한 신혼생활을 보내며 살면서 한번도 누려본 적 없었던 완벽한 소유에서 오는 행복을 느낀다. 이제 그녀와 자신을 닮을 아이만 낳으면 더 알콩달콩해 질 것 같았는데 그녀의 외박 횟수가 늘어감에 따라 의심은 더 커지지만 그런 그에게 그녀의 '남자도 있었고 여자도 있었던 술자리'에서 시간을 보낸것 뿐이라며 당당한 태도에 할 말을 잃는다. 사실 그녀가 다른 남자와 술을 마시고 새벽녘에 들어온다는 것쯤은 직감으로 알 수 있었지만 이 안정적인 소유의 상태를 깨고싶지 않아 그쯤에서 덮어두려 할쯤 그녀 스스로 "그사람을 사랑하며 당신도 그이를 보는 순간 좋아할 거다. 그이와 결혼하고 싶다"라며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한다. 이혼을 해달라는 것도 아니고, 자신과의 결혼생활은 주말부부라는 틀로 유지한채 주중에는 저 놈과 유지하며 살겠다니? 처음에는 배신감에 치를 떨며 말도 안되는 일이라고 생각하며 이혼서류에 도장까지 찍지만 결국 그것을 인아에게 전해주지 못하고 다시 그녀에게 한 발짝 양보하여 다 용서해줄테니 자신에게 돌아오라 간청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요지부동이다. 그녀와 그가 동거하는 경주 아파트에 내려가 몰래 열쇠맨을 불러 문을 따고 들어가 그의 물건들을 보자 더 참을 수 없다. 아니, 더이상의 전투의지를 잃어버렸다. 그는 그녀의 정신세계를 공유할 수 있는 소울메이트다. 그녀가 좋아하는 헌책 수집을 좋아하며 보아하니 그녀와 일하는 직업군도 같다. 옷장을 열어보니, 우비 두개가 가지런히 걸려있다. 자신에게 비오는날 비를 흠뻑맞으며 사랑을 나누는 것이 섹슈얼 판타지라했던 인아가... 자신은 용기가 없어 아직 시도도 못해본 그것을 그놈과는 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가 임신을 했단다. 그놈의 아이일수도 있으나 일단은 '우리의 아이'라고 말하는 그녀를 믿고 싶다. 아니, 그녀는 진실을 말해줄지라도 일단은 듣고 싶지 않다. 다시 이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제삿날, 군소리 한번 않고 자신의 집안 행사에 묵묵히 일해주는 그녀가 고맙다. "호적에 빨간줄 긋고 두번째 남편과도 죽네 못사네 한다. 못살겠다"며 하소연하는 자신의 늙은 노모를 보며 그녀와의 이혼을 감행 했을때의 그 후폭풍을 감당해낼 자신이 없다. 결국 그는 그녀의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기로하고, 자신에게 반쪽짜리 사랑이라도 주는 현실에 감사하며 주말뿐이라도 그녀를 통해 자신이 행복해지기를 결심한다. 그러나 회사동료들이 인아가 다른 남자와 결혼했음이 밝혀져 그의 인간관계의 근간이 그로인해 흔들리기 시작하자 이 사회적으로도 도저히 용납되지 않는 상황에 분개하며 모든것을 다시 제자리로 되돌려 놓기로, 그녀를 온전히 내 것으로만 만들어야 겠다고 결심한다. 친자감별확인을 해보니 분명 나의 딸은 '나의 딸'이 맞으므로 저 놈이 내 아이의 또다른 아버지가 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생각했을때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자신과 보냈던 딸의 첫번째 돌잔치가 끝나자마자 그놈과 그녀의 두번째 돌잔치에 찾아가 모든것을 말한다. "저 아이는 내 아이고 저 여자도 내 아내다."라고... 그런 그에게 화가 나고 실망한 인아의 표정을 보자 화가 나기는 커녕 그녀를 잃을 까봐 더 미칠 것 같다. 그 놈이 자신에게 찾아와 "우리는 피임을 했으며, 인아씨는 당신의 아이를 가지길 원했다. 그리고 나는 그것을 받아들였다."라고 고백하자 이유 모를 안도감과 그래도 그녀는 자신이 먼저고 저놈은 첩과 같은 존재에 불과할 뿐이라며 인아에게 자신이 첫번째 존재임을 위안삼으며 다시 한번 그녀와 그녀의 세컨드를 받아들인다. 이 셋과 그들 모두의 아이는 모두 함께 스페인에서 FC바르셀로나의 경기를 보며 같이 응원하고 웃으며 '우리'가 된다.

이 말도 안되는 비슷한 경우가 아주 먼 시절도 아닌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에서는 성역할만 바뀌었을 뿐 아주 흔하게 볼 수 있었다. 물론 지금은 남녀 모두의 간통은 사회적으로 지탄받는것이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아직까지도 남성의 간통은 여성의 간통보다는 상대적으로 너그럽게 처리된다. 그리하여 이 영화를 본 대부분의 관객들의 반응은 크게 '여자도 과거의 남성들처럼 다수의 배우자를 가지는 것이 여성의 인권이 향상된 이 시대에 그리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혹은 '여자가 여러명의 남편을 두려한다니 불쾌하다.'의 이 두가지 였다. 하지만 필자가 생각하건대 이 영화의 원작자인 작가가 진정으로 말하려고 하는 메세지는 그저 '결혼이란 제도를 통해 사랑을 독점하고자하는 인간의 욕구'를 되새겨 보자이지 '일처다부제'의 가능성에 대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남성이 여러명의 여성을 독점하는 상황이었다면 어쩌면 당연하게도 받아들였을지 모르는 기존의 고정관념때문에 '떠나는 배'역할을 여성이 '기다리는 항구'역할을 남성이 하게 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사랑에 있어서의 소유욕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끔 하는 장치가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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